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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저널/2012대선

10분만에 읽는 프레이저보고서-수출주도형 한국경제성장은 누가 시켰나?!

[백쟁 스페셜 에디션] 프레이저 보고서 1부

원본보기> http://youtu.be/z-up2VNU8eo

1976년 미국은 충격에 빠짐 코리아게이트라 불리는 박정희가 미국의원 매수사건으로 인해

사건진상 소위원회에 프레이저가 조사시작 그때부터 박정희 정권에 대해 샅샅이 조사하기 시작함.

이때 박정희 3선 성공에 큰 공을 세웠음에도 버림받자 김형욱이 미 프레이저 청문회 증인으로 참가

하지만 이를 단호히 거부한 김형욱은 박정희 정권의 비밀을 적나라하게 폭로 하고..

1978 8.31 프레이저 보고서가 드디어 의회에 제출 됐다

근데 놀랍게도 박정희 집권기간 전체가 조사돼 있었다.

더욱 놀라운건 한국경제성장에 관한 내용까지 있었다.

왜 한국은 그토록 빨리 성장 할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이 담겨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박정권은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국민들을 속였다

하지만 불과 1년뒤 박정희는 부하 김재규의 총탄에 살해되었다

한국인들도 이제 한국경제성자의 진실을 알 기회가 왔으나....

박정희가 키워논 군인들이 곧바로 정권을 잡았고 프레이저 보고서의 내용을 철저히 차단하고 그 보고서는 잊혀져 갔다.

한국은 아주 빠른 시간에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학자들은 이를

에 있다고 분석한다 …

근데 이 전략을 제시한 사람은…..누구일까??

한국의 중장년층은 이사람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하지만 프레이저 보고서는

박정희가 아니라고 말한다.

비밀이 해제된 미국 기밀보고서들도 박정희가 수출주도형 전략을 제시한적이 없다고 얘기 한다.

그럼 도대체 누가 한국경제를 성장시킨걸까???

2차대전에서 승리 후 미국의 최대 적은 구소련이었다.

소련은 위성국가게 경제원조를 해주며 세력을 팽창해나갔고, 공산주의 팽창에 맞서 미국은 일본을 점령하자 즉시 개조작업에 들어갔다.

미국식 문화와 제도를 빠르게 이식시켰다.

이와동시에 미국은

이렇게 선언하고 일본에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

그러자 폐허가 됐던 일본경제는 빠르게 복구되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은 전쟁물자를 보급하면서 엄청난 고속성장까지 이룩했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정반대였다.

남한의 이승만정권은…

완전히 실패했다.

막대한 원조를 했지만

경제상황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이승만과 친일세력의 부정부패가 극에 달했다

이에 반해

공산국가의 원조를 받은 북한은 3년만에 전후복구를 이뤄냈다.

그리고 천리마 운동을 통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그 결과..경제력은

이렇게 벌어졌다.

이로 인해 미국인들은 위기감을 느꼈다 가난한 한국인들이 북한을 부러워하다 공산혁명을 일으키지 않을까 미국은 매우 불안했다.

그때 한 남자가 나타났다.

젊고 스마트하고 섹시한 남자…

존F케네디 그는 미국의 대외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려 했다.

이것은 공산주의를 막기위한 케네디정부의 새로운 전략이었다.

유능한 케네디의 전략가들

그들은 공산주의 국가가 계속 늘어나는 원인을 철저하게 분석했다.

그 결과…

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래서 공산주의를 막을려면 가난한 나라들에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이 친미국가 개발계획의 핵심이었다

이때 한국에 관하나 긴급보고서가 케네디에 보고 되었다.

그리고 1961 4월 11일 미대사도 긴급보고서를 올렸다.

그러자 케네디는 즉시 매카나기 주한미대사를 불러 중대한 임무를 맡겼다.

'매카나기의 주도 하에 한국의 태스크 포스팀을 만들고 5/15일까지 한국의 발전전략을 담은 종합보고서를 완성하라'고 지시

그것은 가난한 한국인들에게 축복같은 소식이었다.

이때 새로 등장한 장면정부도 경제부흥을 최우선 목표로 걸었다.

만약 미국의 새전략에 따라 5개년 계획이 성공한다면 장면은 뛰어난 지도자로 존경 받을 것이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장면의 손을 잡아 주지 않았다……

쿠데타가 벌어지자..케네디는 즉시 박정희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다

그러자 다음날 부터 기밀보고서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케네디가 알게 된 정보는

일제때 한국민족을 배신한 친일파란 것이었다.

그리고 해방 후 박정희는

해방 후 공산주의자로 활동하다 체포 되었다는 것이다.

이때 박정희는 자신의 동료들을 밀고하여 죽음을 면했다.

이 사건으로 미군들은 박정희를 뱀 같은 인간이라고

별명을 부쳤다

쿠데타의 리더가 공산주의자였다니….케네디와 참모는 긴장했다

그런데 희망적인 보고서들이 계속 올라왔다

이런 보고서들을 보자 케네디는 여유를 되찾았다.

그는 쿠데타 때문에 연기 되었던 한국문제를 다시 열기로 결정했다

1961년 6/13 바로 이날 한국의 운명을 바꾸는 논의가 이루어 졌다.

한국문제 테스크 포스팀이 작성한 종합보고서...

국가기밀로 보관된 그 문서에는 미국이 한국을 발전시켜야 될 이유로 3가지를

첫째,

둘째,

셋째,

결국, 한국이 무너지면 일본도 위험해지고 미국의 태평양 방어라인이 위험해진다.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한국경제를 발전 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고서는 미국이 돈을 쏟아 붓고도 한국을 발전시키지 못하는 것을 정확히 분석했다.

그런 뼈아픈 반성을 한 뒤 한국의 경제 개발에 집중투자한다고 결정한 것이다 정말 케네디의 전략가들은 치밀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한국의 발전을 위해서는 행정개혁

부패추방,

그리고 교육제도도 개혁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국가발전을 위해 과학분야와 기술, 직업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1961/6/13일 미국의 최고 엘리트들이 모여 앉아 한국의 경제 개발과 근대화전략을 수립해버린 것이다.

케네디는 이케다 수상과 만났다.

라고 당부 했다. 그러자 이케다는 미국의 뜻에 협조하겠다고 답변했다.

그뒤 일본 극우파 정치인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극우파의 거물 요시다 전수상, 그도 미국에 와서 케네디와 한국문제를 의논했다.

근데 왜 일본 극우파들이 한국을 돕겠다고 나선 것일까?

그 이유는 요시다 쉬게루가 자기 입으로 당당하게 밝혔다.

이건 농담이 아니었다. 그들은 한국을 일본의 경제 식민지로 만들겠다.

그런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한국경제를 일본의 의존적인 구조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일본 원자재와 설비로 상품을 만들고 번돈으로 다시 일본 원자재를 수입하는 무한 반복시스템을 확고하게 정착시킨다 는 그러한 얍삽한 구상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미쯔비시 미쓰이 같은 대기업들은 10년 만에 얻은 절호의 기회라며 흥분해 있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일본은 친일파였던 박정희를 주시했다.

만약, 그에게 뇌물을 준다면 일본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줄 인물일까?

그들은 몹시 궁금했다..

미국과 일본이 주시하는 가운데 박정희는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7/4일에 반공법을 선포했다.

그것은 자신이 공산주의 와 완전히 손을 끊었다는 메시지였다.

그리고 10월 31일 한 언론인에게 사형판결을 내렸다.

북한을 찬양했다는 누명을 씌운 것이다.

조용수는 재일교포 북한보내기 운동에 반대운동까지 벌렸던 사람이다.

그는 억울한 누명을 쓴 채 31살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그렇게 박정희는 무고한 사람을 살해하며 자신이 얼마나 과격하게 반공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

이것은 미국인들에게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11/11일 박정희는 일본과 미국에 권력자를 만나러 떠났다.

박정희가 공항에 내리자 일본 극우파들의 관심은 절정에 달했다

그런데 박정희는 파격적인 행동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일제 때 만주 군관 학교에서 천황의 군인을 양성했던 나구모 장군..

박정희는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건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침략을 당했던 한국인에게서 '고맙다'는 말까지 듣다니..!!

극우파의 대부 기시 노부스케는 박정희를 요정에까지 초대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박정희는 일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가꾸메 오꼬시다 도끼~와따시와 메이지신노 시시다치오

오모이까데마시따

와따시와 메이지신오 오꼬시다 시시다치오 통케이시마쓰)

일본 명치유신의 지사들은 과연 누구일까?

조선 침공의 선봉장 사이고 다카모리

박정희는 그런 침략자들에게 존경심을 표한 것이다.

이제 일본 극우파들은 확신했다.

친일파 박정희와 손잡고 한국을 일본의 경제 식민지로 만들수 있다.

그렇게 확신한 일본은 박정희 정권에 검은 돈을 주기 시작했다.

이제 한국은 대일적자의 수렁 속으로 빠지게 된 것이다.

박정희가 미국에 오기 10일전 케네디는새로운 조직을 탄생시켰다.

AID는 친미국가 개발전략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결국 AID는 공산주의를 막기위한 경제 전문가 부대였던 것이다

일본방문을 마친 박정희가 미국에 도착했다

케네디는 일본과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인 박정희를 밀어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회담도중 박정희는 특별원조를 요청했다.

케네디는 내심 당황했다.

이미 그는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석달 전 미국대사가 이미 박정희에게 경고를 보냈다

당신들이 만든 ...

버거의 말은 정확했다.

박정희의 경제 참모조차 인정할 정도였다. 그런 경제 계획에 케네디가 특별원조를 해줄순 없었다.

그리고 실무진 회담에서 AID처장은 미국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밝혔다.

이때부터 미국과 갈등이 시작됐다. 미국경제 전문가들은 냉정하게 비판했다

현실을 무시하고 설정한...

그리고

사실 박정희에게도 수출전략이 없었던건 아니었다.

토끼털을 깍아 팔고..

생선을 많이 잡고

돼지를 키워서 외화를 벌자!!

즉, 수출기업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해서 한국경제를 성장시킨다. 그런 수출 확대 전략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미국 전문가들은 국민들 돈을 외자로 도입해서 종합 제철소 같은 거대 산업시설을 짓겠다는 계획도..

시기상조라며 비판했다.

그러나 박정희는 자신의 경제개발 전략을 바꾸지 않았다.

"연평균성장률 7.1%나 되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강력히 추진할 것을 결정하였고 ~"

박정희는 자신만만하였고 자신의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때문에 그는 감춰왔던 자신의 생각을 거리낌없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제 식민지 키드로 살았던 박정희 그는 방송을 통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당당히 밝혔다. (프레이저보고서영상 http://youtu.be/z-up2VNU8eo 27분 13''부터 나옴 )

" 과거 우리민족은 너무나도 의타적이고 사대주의적이었으며 우리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개척하고 극복해나가겠다는 자주정신이 너무나도 결핍됐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그리고 3.1절이 되자 '우리민족이 나아갈 길'이란 거창한 책을 펴냈다.

그런 다음 그는 바로 자신이 퇴행적인 한국국민의 구원자이며 경제발전의 영도자임을 완벽하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1962년 5월

증권시장이 파탄이 났다. 그의 조카사위 김종필의 부하들이 정치자금을 마련하려고 사상최대의 주가조작 사기를 친 것이다.

김형욱의 증언에 의하면

이때 김종필이 긁어 모은 일부 돈은 박정희에게 상납되었고

에 쓰였다고 한다.

이것은 걸음마를 떼려던 한국경제에 치명타를 안겼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박정희는 더 큰 사고를 쳐버렸다.

박정희는 사전조사도 안해보고 이전화폐를 폐기하고 새 화폐를 발행했다.

게다가 예금한 돈 까지 자유롭게 인출하지 못하게 했다. 그때문에 돈의 유통이 멈춰 경제가 마비되며 한국전체가 대혼란에 빠지게 됐다.

이를 보고 버거 대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때 삼성의 이병철 사장이 박정희에게 달려 갔다

그리고 화폐개혁의 위험성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박정희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때부터 미국도 박정희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라고 논의하게 까지 이른다. 이것은 박정희에게 최대의 위기였다.

지하자금을 동원해 경제개발에 쓰겠다며 화폐개혁을 한 것인데

막상 저지르고 보니 지하자금은 몇 푼되지 않았다.

그대신 경제적 혼란과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전국공장의 절반이상이 가동을 멈추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미국은 박정희에게 예금동결을 해제하라고 압박했다. 그리고..

그러자 버거는 조용히 말했다.

이제 미국이 동의해 주지 않으면 어떤 경제 정책도 자유롭게 추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박정희의 참모들이 대거 물러나게 된 것이다. 경제개발을 추진했던 핵심참모들도 전부 짤렸다.

그 뒤 새롭게 경제관료들이 등장했다.

새 관료들은 1차계획이 수정되야 한다는 발언까지 했다.

박정희는 당황했다 이미 진행중인 계획까지 공격 당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는 처절하게 저항했다.

오히려 개발계획의 규모를 더 확장해야 한다고 맞섰다.

그러자 미국은 전면에 나서 필살의 무기를 빼들었다. 한국언론을 통해 박정희의 경제계획에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그 당시 한국은 미국의 원조가 끊기면 붕괴하는 나라였다. 이 기사를 본 한국 국민들은 동요를 할 수밖에 없었다.

권력유지를 위해 국민들의 지지가 필요했던 박정희…

결국 미국의 힘앞에 완전히 무릎을 꿇었다.

이때부터 신임관리들이 1차 경제개발계획서를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이때 미국은 비밀리에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미국은 인정사정이 없었다.

박정희 정권이 미국의 정책에 조금이라도 비협조적이면 미국은 한국의 경제원조 책임자를 한국에서 철수시키며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의 핵심요구사항이 모두 들어간 새로운 경제 개발계획서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미국의 적극적 개입과 지도를 받는 수출 주도형 개발전략으로 전환되었다.

사뮤엘 버거대사 그는 박정희를 좋아했다. 버거는 박정희를 잘 교육시켜 미국의 목표를 실현시키는 대리인으로 써야 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 미국은 어떤 수단으로 박정희를 교육시키려 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채찍정책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럼 당근정책은 어떤 식으로 사용되었을까?

1962년 화폐개혁의 실패를 기점으로

개혁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한 미국

이제 미국의 다음 목표는 수출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키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한국의 환율정책을 뜯어 고쳐야 했다.

그 당시 한국의 환율은 비정상적으로 낮게 책정되어 있었다

(평가 절상됐단 비쌌단의미)

예를 들어 수출업자들이 1달러짜리 가발을 수출 하면 133원 밖에 못 받았다.

이 때문에 미국은 환율을 300원대로 대폭 올릴 계획이었다.

그렇게 되면 가발을 하나 수출하면 곧 바로 300원을 벌게 된다.

이익이 2배로 뻥튀기 되는 것이다.

그럼 기업들이 수출에 목숨을 걸고 달려들게 된다. 결국 환율개혁은 한국의 경제구조를 수출주도형으로 바꾸기 위해 가장 필수적인 정책이었다.

그러나 장애물이 있었다.

박정희는 환율개혁에 거부감을 보였다.

수출에는 좋을지 모르나 반대로 수입품의 가격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1달러짜리 물건을 133원에 사다가 300원에 사게 되면 물가가 오르기 마련이다.

그럼 가난한 서민들의 불만이 커져 박정희의 인기가 떨어진다.

이때문에 박정희는 환율개혁에 거부감을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미국은 채찍을 쓰지 않았다.

그대신 미국은 환율 안정금이라는 먹음직한 당근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밀고 당기는 협상끝에 1달러당...

에서……….

255원까지 올리는데 성공했다.

사무엘 버거는 협상결과를 이렇게 기록했다

연간 GNP성장률이 1964년과 1965년에 걸쳐 6%에 달했다.

이는 1961년과 대비해 볼 때 여섯 배나 많은 것이다.

이런 광경을 목격하며 박정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런 빌어먹을..왜..내 결정과 반대로 가면..." 그런 자책을 했을까???

아니면…

"..그런 다짐을 했을까??"

박정희는 둘 다 아니었다.

그는 기자들을 전부 불러 모았다. 그리고 카메라 앞에서 손가락을 휘두르고

노동자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수출품도 만져 보며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미친듯이 손을 흔들며 외쳤다.

"한국 민주주의 갈길은 본인이 제시한다."

"가자! 수출 10억불을 향해~"

박정희의 전략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수출을 통해 조국이 무섭게 성장하는 광경을 감탄스럽게 바라보는 한국인들..

그들은 이 모든 것이 박정희 지도력 덕분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프레이저보고서 2부 미리보기

1964년 7월 드디어 그 남자가 왔다.

그의 임무는 안정화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것..

그것은 한국경제를 도약시키기 위한 종합계획이었다.

또한 그에게는 부가임무도 있었다

그것은 한국대통령에게 경제를 가르치는 일..

박정희의 경제과외교사. 그의 이름은 조엘 번스타인..

1965년 한국은 베트남의 포화속으로..뛰어 들었다.

한국인들에게 베트남은 황금빛 엘도라도 였다.

1966년 박정희의 아내 육영수..그녀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도대체 박정희와 그의 부하들은 무슨 짓을 저지르며 한국경제를 망치고 있었을까??

이 모든 내막이 프레이저 보고서 2부에서 공개 됩니다.

아직 안올라왔구요. 대신 아래 다른 영상 참조

[백년전쟁 Part.1] 두 얼굴의 이승만- PD 나레이션(풀버전)

http://www.youtube.com/watch?v=9bbBKrv1bbg&feature=share&list=PLe8PqJoXeD8RK5Z5pXAi8pYMt1EmytRW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