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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현미경(칼럼등)

초대 대통령 노무현을 보내고


                                                                                                  -일 몽


1. 연인의 연인


7년 전 가을 언제쯤인가에 나는 이런 글을 썼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나는 그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여길 것이다”라고. 그 글에 달렸던 댓글들이 몇 개 생각난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냐?’, ‘DJ마저도 부정한다는 것인가?’ 등등. 오늘 다시 그 말을 하면 어떤 댓글이 달릴까? 나의 첫 대통령, 나에게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었던 그를 보내고 온 오늘...

그 때나, 지금이나 나의 초점은 국민들에게 있다. 대통령직을 맡았던 인물이 아니라, 그를 뽑았던 국민들이 나의 관심의 대상이다. 나는 노무현이라는 사람보다 그런 사람을 뽑을 수 있었던 국민들에게 관심이 있었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기까지의 국민들의 진화 과정에 더 관심이 있었다. “노무현보다 노사모가 더 중요하다”라는 당시의 나의 주장 역시 맥락은 같은 것이었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간단하다. 노무현 대통령 이전에는 우리는 대통령을 가질 준비가 안 갖추어진 국민이었고, 때가 되어 비로소 대통령을 가질 기본적인 준비가 되어 최초의 대통령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DJ 조차도 부정하냐는 댓글은 좀 억울하다. DJ? 물론 훌륭하고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 그분이 있었기에 비로소 우리는 대통령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니까.

7년 전 초대 대통령론을 펼칠 때는 차분히 쓸 수 있었지만, 오늘도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말은 국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하지만 내가 사랑한 것은 개인 노무현이었으니까... 어쨌든 이야기해보자. 참으로 매력적인 인간 노무현을 잃은 슬픔을 누르고, 그에 대한 사랑마저 감추고. 그에 대한 사랑은, 그가 신화가 되는 것을 왜 방해하려하느냐고 내 손을 붙잡는데, 나는 그에 대한 역사를 이야기하려 한다. 그가 사랑한 것이 국민이었기에, 나는, 그를 사랑했던 나는, 그에 대한 나의 사랑을 감추고, 그가 사랑했던 국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적으려 한다. 연인의 연인의 이야기를. 그를 배반하고, 그가 죽음으로 몰릴 때까지 그를 방치하고, 이제 다시 그를 향한 사랑의 말을 후회로서 되뇌이고 있는 그의 연인에 대한 이야기를...


2. 자유

마케도니아의 젊은 왕이 세계의 주인이 되는 것과 마케도니아의 한 노예가 자신의 주인이 되는 것은 어느 것이 더 쉬웠을까? 우리는, 인간이라는 종은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 되는 것이 쉽지 않았던 긴 세월을 살아왔다. 자유란 자신의 모든 결정을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두렵고, 피곤한 일이다. 자유란, 모든 인간이 타는 목마름으로 갈구하는 자유란, 때론 무서워 도망치고 싶은 어떤 것이다. 나치를 선택한 독일인들에게서 영감을 받은 에리히 프롬이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말로 설파했듯이. 쉽게 말하자면 인간의 진화 과정에는 자신이 결정하는 것보다 짱의 결정을 믿고 따르는 편이 생존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시간이 훨씬 더 길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 자유에 대한 두려움은 아직 우리의 본능 속에 숨어있다.

대통령제라는 제도는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이다. 그들의 이름은 프로테스탄트.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저항하는 자이다. 대통령제가 독재로 가지 않으려면 저항하는 국민들이 필요하다. 자유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자유에 대한 갈망이 더 큰 국민들이 대통령제를 제대로 시행하기 위한 가장 큰 전제조건이다. 서구의 혁명을 국민혁명이라 부르지 않고 시민혁명이라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땅에 묶이고, 영주에게 묶이는 것을 거부하고 도시로 모인 사람들에 의해 민주주의는 만들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했는가? 나는 세계의 왕정 중에 가장 앞선 것이 조선의 왕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세자는 온 나라에서 가장 앞선 학자들에 의해 통치 기계로 키워진다. 그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이나 지식이 아니라 덕의 함양이었다. 왕위가 세습제였다는 점만을 제외하면 플라톤이 말한 철인 정치에 가장 접근했던 제도이다.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기간도 많았지만 경국대전 그대로 제도가 작동할 때는 당대의 가장 안정되고 평화로운 나라가 조선이었다. 그런 세월이 무려 500년이었다.

이승만이 이왕가의 후손이 아니었더라도 그리 쉽게 대통령이 되었을까? 나는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박정희의 통치방식은 대통령에 가까웠는가? 아니면 왕에 가까웠는가? 양 김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그들이 민주주의 의식이 있었는가, 아닌가가 초점이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였는가를 묻는 것이다. 그 둘을 각각의 지역 영주로 인식한 국민들이 더 많았을까? 민주화의 지도자, 보스가 아닌 리더로 인식한 사람이 더 많았을까?

3. 시민이 된 국민들

독립된 자아를 가진 시민의 수가 조금씩 늘기는 했지만 1997년까지는 우리는 아직은 시민이라기보다는 백성에 가까웠다. OECD 가입과 성공적인 올림픽이 우리의 자존심을 높여주기는 했지만 그것은 모두 관이 주도하여 만든 성과였다. 그런데 IMF 사태가 터졌다. 나랏님들이 택도 없이 헤매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국민의 힘으로 극복이 되었다.

물론 IMF의 극복 과정에서 김대중 정부가 차지해야 할 공은 적지 않다. 그런데 민주 정부에 적대적인 사기 찌라시가 언론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 역으로 도움이 되었다. 어떻든 IMF 사태는 극복이 되었는데, 그것도 다른 어느 나라의 예보다 빠르게 극복이 되었는데 찌라시들은 그것을 김대중 정부의 공으로 돌리기가 너무 싫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위대한 우리 국민 타령을 하고, 금 모으기를 부각하고, 역설적이게도 그런 태도가 국민들의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적잖이 공헌을 한 셈이다.

거기에 IT 혁명이 있었다. 혼자 결정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의 자유를 영주에게, 대통령이라 불리는 왕에게 떠맡기던 사람들이 혼자가 아니게 된 것이다. 가상공간에 들어가면 자신과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된다. 그것도 신분 노출 없이 만날 수 있으니, 빅 브라더에 대한 두려움 없이 만날 수 있다. 광장을 가지지 않은 시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광장을 가지기 전까지는 그들은 그저 백성일 뿐이다. 광장을 가졌을 때 그들은 비로소 시민이 된 것이다. 그 최조의 시민군단이 붉은 악마, 노사모였다. 비로소 대통령을 가질 최소의 자격을 가춘 국민들이 탄생한 것이다. 백성이 아니라 시민으로 이루어진 국민.

4. 욕망

자유를 유보하는 자들은 욕망을 참을 줄 안다. 그들의 소망은 단순하다. 등 따숩고, 배 안 곯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절제는 보장으로 가능하다. 국민은 절제하고, 나라는 밥과 집을 주는 것. 그것이 국가주의다. 그러나 자유는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어차피 보장되지 않는다면 참을 이유가 없어진다. 원래 눌렸다가 터져나오는 욕망은 더욱 거센 법이다. 절제되지 않는 자유란 만인 대 만인의 무한 경쟁을 의미한다. 예전의 자유주의나, 요즘의 신자유주의나 마찬가지다. 자유만 존재한다면, 오직 자유만 존재한다면 그것은 끝없는 무한경쟁이다.

자유를 누리기 위한 전제 조건은 무엇인가? 관을 대신할 수 있는 제동장치는 무엇인가? 그것은 연대다. 타인에 대한 존중, 약자에 대한 배려, 건전한 토론, 결과에 대한 승복. 그 모든 것에 바닥에 깔려있는 것은 사회적 연대 의식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연대가 존재하였는가? 최초의 대통령을 뽑은 우리에게 대통령제를 계속 누릴만한 연대의식이 있었는가? 우리는 반대에 앞서 대안을 고민하였는가? 비판이 비난이 되고, 동지의 등에 칼을 꼽는 행위가 되지 않도록 하는 절제가 있었는가?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사라진 사회에서, ‘부자 되세요’가 인사로 통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연대를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연대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산업싸이클마저 불리했다. 우석훈씨의 책에서 밝혔듯이 제조업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돈이 금융업으로 흐르는 시기가 온다. 금융업이 제조업을 압도하면 부익부, 빈익빈은 필연의 결과가 된다. 딱 그 시기. 모든 국민이 재테크라는 이름의 투기판에 몰두하는 시기에 하필이면 우리는 최초의 대통령을 가지게 됐다. 욕망이 들끓는 시대. 판에 끼지 못한 좌절감에 떠는 시대에, 어느 한 사기꾼이 나타나 외쳤다. ‘내가 더 큰 투기판을 열어줄께’라고.

노무현도 뽑은 국민인데, 상고 출신 비주류도 대통령으로 만든 국민인데, 그 위대한 국민이 무엇을 두려워할까? 사기꾼이면 어떤가? 독선으로 뭉친 자면 어떤가? 그가 우리의 뜻을 어기면 다시 광장에 나가 촛불 들고 외치면 그만이다. 그러면 그를 통제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겠지. 그렇게 만만하게 생각했겠지. 이천만원짜리 판자집에 사는 사람도 더 큰 투기판이 열리면 2억짜리 집에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겠지. 그 때는 서민 아파트가 십억이 되고, 2억짜리 집은 여전히 판잣집일지라도, 2억짜리 판자집에서 살면 이천만원짜리 판잣집에서 사는 것보다 좀 나으리라 생각했겠지.

참여정부의 슬로건은 ‘국민이 대통령입니다’였다. 그러나 국민들은 ‘국민이 왕입니다’로 착각한 듯하다. 첫술에 배부르랴. 최초의 대통령제를 하는 데, 대통령이 할 일이 무엇인지를 어찌 알았으랴. 사실 왕이란 대통령보다 더 힘든 것이다. 박지원의 양반전에 보면 돈으로 첩지를 사 양반이 되려한 자가 양반으로 지켜야 할 덕목을 듣다가 차라리 상민하고 만다며 포기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그 양반보다 몇십 배 더 지키기 힘든 것이 왕으로서의 덕목이다. 그래서 왕 하지 말고 그보다는 좀 쉬운 대통령을 하라는데, 국민은 굳이 왕을 하려했다. 그나마 의무는 없고 권리만 있는 왕 노릇. 제 눈에 거슬리면 그저 타박하면 되면 왕 노릇. 국민이 하려 했던 것은 그런 왕 노릇이었다. 그 왕이 마치 영주 하나를 임명하듯, ‘청와대는 니가 다스려봐’라며 어느 사기꾼에게 청와대를 맡겼다. 욕망을 쫓아, 절제되지 않는 욕망을 쫓아...


5. 노무현의 아이들

역사란 늘 그렇게 흘러간다. 남들보다 좀 빠르게 갈 수도 있고, 좀 느리게 갈 수도 있고, 좀 더 격하게 갈수도 있고, 조금은 부드럽게 갈 수도 있지만, 역사는 뛰어 넘지는 못한다. 역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최후는 그 흐름을 뛰어넘으려 했던 대부분의 인물들이 겪었던 일이다. 이제 겨우 대통령을 가질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을 간신히 갖춘 국민에게 바로 모든 것을 열어버린 과속의 결과이다. 당정 분리, 검찰 독립, 특별 교부금의 공적 이용. 모두 언젠가는 가야할 길이었지만 너무 빠르게 갔다.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이라도 갖춰져 모든 국민들이 욕망의 노예로 변하지 않을 수는 있게 될 때까지는 대통령과 왕 사이의 어느 적절한 지점에서 머물렀어야 했다.

너무 빠르게 달려간 길. 그 길을 가면 나라가 어떻게 바뀐다는 것을 그가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렇게 바뀐 나라에서 국민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아직 알지 못했다. 그 간격이 모든 비극의 원인이었다. 하지만 그걸 너무 빠르다고 할 수 있을까?

그가 아니었으면 누가 또 그 길을 갈 수 있었을까? 50년이 걸릴지, 100년이 걸릴지 모르는 길을 그의 덕분에 우리는 훨씬 빨리 달려온 것이 아닐까?

국민이 알아야 할 것을 해피엔딩으로 배우지는 못했지만, 가장 빠르게 가장 뼈저리게 알게 된 것은 아닐까? ‘당신이 진짜 미웠던 것은 아니라’고, ‘당신이 우리를 사랑했던 것을 잘 알고 있노라’고, 그의 영정 앞에서 어깨를 들먹이며 우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생각한 것은 그것이었다. 사는 데 가장 중요한 앎은 이렇게 아픔으로 배워간다고.


사랑은 눈을 멀게 한다든 데, 국민들을 사랑한 죄로 그는 우리 국민들의 장점만을 본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너무도 사랑했기에 그 길 밖에는 갈 수 없었든 것이었을까? 어쨌든 결론을 내려보자. 그는 실패한 대통령일까? 아직 알 수 없다. 당대만을 보자면 실패겠지만, 민주주의가 30년은 후퇴한 지금의 상황을 보면 실패겠지만, 그가 우리의 가슴 속에 심어준 것이 끝내 피지 않고 시들어버린다면 실패라 부르게 되겠지만...

아직 평가하기는 너무 이르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대통령제가 무엇인지를, 국민이 대통령이라는 말이 무엇인지를 아는 아이들이 자라고 있기에 아직은 평가가 이른 것 같다. 희망 돼지를 모으던 아이들, 어른들보다 앞서 촛불을 들고 시청광장으로 모였던 아이들. 그들이 자라고 있다. 노무현의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연대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 아이들의 눈초리를 의식한다면 그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기를 다짐한다면, 오늘의 아픔은 큰 도약을 위한 아픔일 수 있다. 비로소 대통령제를 제대로 가질 수 있는 자격을 가지기 위한 껍질을 깨는 아픔일 수 있다.


알을 깨고 나올 것인가? 그대로 죽어버릴 것인가?

국민이여, 대한 국민이여, 내 사랑하는 초대 대통령 노무현이 그토록 사랑했던 대한 국민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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